정약용의 『흠흠신서』: 공정한 재판이란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는 “공정한 재판”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실제로 공정한 재판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판사는 법률대로만 판단하면 되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적인 고민과 윤리적 성찰이 개입되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는 고전이 있으니, 바로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남긴 『흠흠신서(欽欽新書)』다.
『흠흠신서』란 무엇인가?
『흠흠신서』는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지은 형법 관련 저술로, 총 30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흠흠(欽欽)’이라는 단어는 ‘삼가 두렵다’는 뜻으로, 생명을 다루는 재판의 엄중함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이 책은 단순한 법률 해설서가 아니라, 인간의 생명과 정의를 다루는 판결이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를 철학적으로 고찰한 실천적 법철학서라 할 수 있다.
정약용은 왜 『흠흠신서』를 썼는가?
정약용은 강진 유배 생활 중 다양한 고전을 탐독하며 조선 사회의 제도적 문제를 분석하였다. 그는 특히 당시 재판 시스템이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잔혹하며, 무고한 백성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현실에 분노하였다. 그리하여 형벌과 판결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담아 『흠흠신서』를 집필하였다. 그는 판관이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로 재판에 임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공정한 재판이란 무엇인가?
정약용은 공정한 재판의 핵심을 “인의(仁義)”와 “신중(愼重)”에 두었다. 그는 법조문보다 먼저, 인간에 대한 존중과 생명의 존엄함을 강조하였다. 법은 단지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규율이 아니라, 백성을 살리고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여야 한다고 본 것이다.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것은 법이 아니라 판관의 마음이다."
이 말은 정약용의 법철학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이다. 그는 판사가 법조문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맥락과 인간의 삶을 고려하여 따뜻하면서도 엄정한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사례로 본 흠흠신서의 깊이
『흠흠신서』에는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사례들이 등장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추상적인 법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정의와 공정이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를 배운다. 예를 들어, 한 사건에서는 살인을 저지른 피고인이 극심한 고문을 당한 끝에 허위 자백을 한 사실이 드러난다. 정약용은 이를 두고 ‘실체적 진실을 무시한 채 절차적 형식에 매몰된 재판은 사형보다 더한 죄악’이라 평하였다.
그는 고문이 진실을 드러내는 수단이 아니라, 진실을 왜곡하는 가장 위험한 도구라는 점을 여러 차례 지적하였다. 실제로 조선시대 재판은 증거보다 자백을 중시하는 문화가 있었고, 이는 수많은 오판을 낳았다. 정약용은 이러한 관행을 강력히 비판하며, “판사는 증거를 통해 진실을 발견하는 과학자와 같다”는 식의 합리주의적 태도를 보여주었다.
정의는 냉정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요구한다
『흠흠신서』가 특별한 이유는, 법의 형식과 정의의 내용 사이의 긴장을 탁월하게 조율해냈기 때문이다. 정약용은 판결이 감정적이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인간적인 도식에 갇혀서도 안 된다고 보았다. 그의 재판론은 냉철한 판단력과 따뜻한 인간애 사이의 균형을 강조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을 심판하는 자는, 사람의 눈물과 두려움을 함께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법을 아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자질임을 말해준다.
흠흠신서가 말하는 공정한 재판이란, 법의 원칙에 따르되, 그 법이 미처 담아내지 못한 인간의 서사를 읽을 수 있는 감수성과 판단력을 갖추는 데 있다.
오늘날의 재판과 『흠흠신서』의 교훈
오늘날 대한민국은 법치주의를 표방하며, 재판은 엄격한 절차와 증거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여전히 억울한 피해자와 무고한 피의자들이 존재한다. 감정에 휘둘리는 여론 재판, 권력에 기울어진 판결, 고위직에 대한 관대한 처분은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흔들고 있다.
정약용이 강조한 ‘심문(審問)의 신중함’은 오늘날의 판사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사건의 사실관계를 얼마나 정밀하게 검토하였는가, 증거는 조작되지 않았는가, 피고인의 진술은 강요된 것은 아닌가 하는 점들을 철저히 따지는 것이야말로, 공정한 재판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판결은 권력이 아니라 양심의 문제다
정약용은 『흠흠신서』를 통해 판결권은 절대 권력이 아니라, 깊은 양심의 작용임을 역설했다. 그는 ‘판결은 천명을 대신하는 일’이라 표현하며, 판사가 신중하고도 엄정해야 하는 이유를 강조하였다.
"천명은 사람의 입을 빌려 말하나니, 그 입이 곧 판결이다."
이는 판사가 사사로운 감정이나 외부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오로지 진실과 정의만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정약용은 판결이 법률의 언어만으로 이뤄져선 안 된다고 보았다. 인간의 고통, 회한, 두려움, 분노와 같은 감정들이 어떤 사건의 내면에 스며들어 있는지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판결을 내리는 것이 진정한 정의라고 믿었다.
흠흠신서가 오늘날에도 읽히는 이유
정약용의 저작은 단지 옛 기록이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처럼 정의와 공정성에 대한 갈망이 커진 시대에, 『흠흠신서』는 다시 조명되어야 할 실천 철학의 보고이다. 고전이라 해서 시대와 단절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잃어버린 원칙을 다시 상기시켜주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
특히, SNS와 언론의 영향력이 판결에까지 미치는 시대, 군중심리가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환경 속에서 『흠흠신서』의 메시지는 더욱 절실하다. 판사는 대중의 눈치를 보는 정치인이 아니라, 양심에 따라 진실을 파헤치는 탐구자이어야 한다.
정약용, 그가 남긴 시대를 초월한 메시지
『흠흠신서』를 통해 정약용은 말하고자 했다. 인간이 인간을 심판할 때, 얼마나 조심스럽고 겸허해야 하는지를. 판결이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에, 재판은 법과 윤리, 철학이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는 점을. 법은 인간을 위한 것이며, 어떤 제도도 사람보다 앞서지 않는다는 점을.
우리는 지금, 공정함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잔혹해지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기계적인 판결, 공감 없는 정의, 책임지지 않는 권위가 우리의 신뢰를 허물고 있다. 이런 시대일수록, 정약용의 사유는 더욱 소중한 나침반이 되어준다.
결론: 공정함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정약용이 『흠흠신서』를 통해 남긴 핵심 메시지는 분명하다. 공정한 재판은 법조문에 대한 기술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와 공감, 그리고 정의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정약용은 그 오랜 유배의 시간 속에서도 생명을 살리는 판결, 억울한 백성을 구제하는 재판을 꿈꾸었다. 그의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흠흠신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정의는 사람을 살리는가, 아니면 죽이는가?”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흠흠신서』의 정신을 오늘에 다시 살리는 것. 고전이 말하는 공정함을 우리 시대에 맞게 해석하고 실천하는 것. 그것이 정약용에게 배우는 진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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